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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
글쓴이 : 패키지포유 날짜 : 2021-03-07 (일) 14:23 조회 : 1325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감지능이 발달한 회사
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

가나이 마사아키(Kanai Masaaki) 무인양품 회장의 1시간 반 남짓한 디자인 세미나가 예정된 컨퍼런스홀은 수용 인원 300명을 훨씬 넘어 간이 의자로 빽빽했다. 검정 터틀넥을 입은 호리호리한 체형의 가나이 회장은 공손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면봉부터 카레, 집, 캠핑장을 아우르는 무지*의 활동 반경에 대해 들려줬다. 무지는 1980년 슈퍼마켓 체인 세이유 그룹의 PB 브랜드로 시작했다. 가나이는 1976년 19살의 나이에 세이유 그룹에 입사해 무지가 PB 브랜드로 탄생하고 커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후 무인양품이 독립 회사로 분리된 이후 양품계획으로 자리를 옮겨 상품개발본부에서 라이프스타일 제품 생산과 세일즈를 총괄했다. 2008년부터 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일상생활에서 우리 기분을 언짢게 하는 것이 많은 한 무지는 계속해서 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말한다. 지난 12월 9일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디자인 세미나 강연차 서울을 방문한 가나이 회장을 인터뷰했다.

EA 오늘 오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디자인 세미나 강연에서 묘사한, 뻥 뚫린 자연 속에서 통나 무집을 관리하는 무지 캠핑장 현장 직원의 여유로운 일과가 인상 깊었습니다. ‘무지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물었을 때 청중들이 너도나도 손을 들었는데요(웃음), 실제로 무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MK 좋은 사람들입니다.(웃음) 비율로 보면 기본적으로 30% 정도는 일본에서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을 뽑고 10%는 다른 나라 출신입니다. 나머지 60%는 매장에서 근무하던 분들이 사원이 되고 싶다고 하면 절차를 거쳐 전환되곤 합니다. 나라에 관계없이 무지의 사고방식을 존중하고 동조하는 분들이 지원을 하는 것 같습니다. 면접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지원자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저희가 판단을 하지요.

EA 무지의 기업 문화를 물고기 떼에 비유했는데요, 물고기 같은 조직을 좀 더 설명해주세요.

MK 작은 물고기 여러 마리가 한데 모이면 한 마리의 큰 물고기 형상으로 함께 움직이지요. 그때 누군가가 위로 가라, 아래로 가라, 밑으로 가라 하고 명령하며 이끄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 같아요. 작은 물고기 하나하나가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죠. 첫 번째로는 자연의 경이로움 때문입니다. 본능적으로 작은 물고기들은 자신의 몸집보다 크게 보여야 안전할 거라는 공통된 생각이 있을 겁니다. 그게 회사로 따지면 큰 범주의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 될 테죠. 그리고 그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는 자기 혼자만 나아가는 게 아니라 옆, 위, 아래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늘 인식하고 있습니다. 내 부서뿐 아니라 다른 부서가 어떤 일을 하는지, 커뮤니케이션이 잘 돼 있는 것과 닮아 있다고 봅니다.

EA 무지의 사내 분위기가 궁금합니다.

MK 큰 소리로 인사하는 인사 운동, 일을 줄여서 매일 정시 퇴근하기, 매일 아침 저를 포함해 모두가 5분 청소하기가 기본입니다. 책상 청소를 하다가 잘 지워지지 않는 매직 자국을 발견하면 ‘내일은 집에서 세척제와 걸레를 가져와야지’ 생각할 수 있겠죠. 인사는 모든 부문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기 위한 기본입니다. 정시 퇴근 또한 일을 규모 있게 계획해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자는 뜻에서 지키려 하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저도 회사에서 사원들과 별 차이 없이 일합니다. 회장실이나 구분된 집무실이 따로 없이 그날그날 책상을 옮겨다니며 일합니다. 뭐, 일도 사원들처럼 적당적당히 하고요.(웃음) 어느 날 한 사원이 출근하면 옆 자리에 제가 앉아 있거나 마주 보고 앉아 있기도 한데요, 서로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EA 나오토 후카사와, 하라 겐야 등 일본 대표 디자이너들을 자문단 삼아 20년 가까이 함께해왔습니다. 일본 내 디자이너뿐 아니라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이나 콘스탄틴 그리치치(Konstantin Grcic)와 같은 거물급 디자이너와도 오랜 협업과 믿음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MK 역시 무지의 사상, 사고방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라 그렇습니다. 하라 겐야와 오래 일하는 것은, 무지의 아이디어나 디자인의 목적이 변하지 않으니까요. 요즘 유행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저희랑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호흡이 잘 맞는 멤버들과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EA 면봉부터 집까지 선보이는 광범위한 무지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서 협업하는 디자이너를 어떻게 찾습니까?

MK 늘 새로운 사람을 찾아다니지는 않습니다. 대신 오랜 기간 가까이서 일하면서 무지를 잘 이해하는 사람들과 잡담을 자주 합니다. 그러다 자연스레 ‘다음에 이런 거 해보고 싶다’라든지 하는 아이디어 교환이 오갑니다. 재스퍼 모리슨이 어느 날은 스웨덴에 이런 디자이너가 있다며 소개해주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독일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고 데려오고요. 무인양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 자문단의 디자이너들이 추천하거나 해서 알음알음 알아가는 식인데, 사실 특정한 형식이나 조건, 기준은 없습니다.

EA 파운드 무지는 다른 기업이었다면 단순히 ‘빈티지’ 혹은 ‘모던 클래식’이라고 표현했을 법한데 무지는 ‘파운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늘 주변에 있어서 중요한지 몰랐던 의미를 찾았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요, 새로운 것을 디자인하는 것만큼이나 기존 것을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능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지는 어떻게 해당 지역 사람들도 미처 몰랐던 매력을 찾아내 발전시키겠다는 건가요?

MK 역시 저희는 전략, 마케팅 같은 말은 안 어울리나 봅니다. 무지가 내세울 수 잇는 스킬이란 ‘간소화 혹은 생략을 통해 매력을 창출하는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일본어로 ‘인공지능’이 아니라 느낄 감(感) 자를 써서 ‘인감지능’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무지는 인감지능의 힘이 꽤 있다고 자부합니다. 그런 힘을 토대로 어느 지역에서 물건을 찾았을 때 이것이 아름다운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논의합니다. 한국, 중국, 대만, 홍콩에서 파운드 무지 제품을 찾는 작업을 했는데, 나름대로 찾아온 것들을 도쿄 사무실에 한데 모아두고 저희 디자이너나 후카사와 나오토 같은 분들이 최종적으로 의견을 주기도 합니다. “이건 좋네”, “영 아니네” 하며 자유롭게 토의합니다.

EA 기업의 이윤 창출에 대해서는 어쩌면 일부러 강조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정말 관심이 없는 건가요?

MK 좋은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는 결국 비용이 듭니다. 아무리 입으로 좋은 이상을 이야기해도 아이디어를 운용할 자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무지는 이익을 최고 목적으로 삼는 회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그 목표를 실행하는 과정을 지속할 수 있도록 제대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논리와 구조를 만드는 것도 저희 몫입니다.

EA 2017년 하반기 베이징에 무지 호텔이 문을 엽니다. 무지다운 호텔은 어떤 모습입니까?

MK 거창한 그림이 있다기보다는, 예를 들어 제가 중국에 출장 가면 직원들이 호텔을 예약해주는데 저 한 사람이 쓰기엔 너무 넓은 겁니다. 너무 넓어서 기분이 썩 좋질 않아요. 그래서 미안하지만 더 작은 방을 찾아달라고 하면 방 크기뿐 아니라 서비스 수준도 별로인 호텔을 골라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딱 좋은 중간 지대 호텔이 없어 곤란한 경험이 있어요. 이정 도면 딱 좋은 중간급 호텔을 만들고 싶습니다. 너무 비싸거나 너무 저렴한 양극이 아닌, 딱 이만하면 좋은 곳, 단순히 그런 겁니다.

EA 무지가 목표로 삼는 지구의 재생, 다양한 문명의 재인식 같은 가치에 대해 듣고 있자면 기업이 아니라 정부나 자선사업 단체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무지가 기업이라는 시스템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즉, 왜 사업을 하나요?

MK 그 어떤 정치적인 문제, 사회적 시스템적인 문제도 결국에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고 봅니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는 결국 개개인의 사고방식의 문제니까요. 올바른 생활 방법을 궁리하고 지구와 문명에 대한 고민을 해보면서 간소하지만 풍요로운 생활을 향해가는 것이 (어떤 형태냐를 떠나)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라고 봅니다.

EA 무지의 일본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무지 하우스와 레노베이션’이라는 메뉴가 있습니다. 공간 레노베이션과 재생 건축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 건축 회사나 인테리어 회사를 소개하는 것 같던데요, 최근 집에 관련해서는 어떤 측면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까?

MK 요즘 저희가 고민하는 바는 일본에서, 그리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는 고령화사회, 비혼 여성 인구의 증가 등입니다. 이들이 늙어서도 고립되지 않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요즘 일본에서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독신으로 살겠다고 합니다. 그들이 나이가 들고 은퇴한 이후의 삶은 어떨까를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앞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끼리 어느 의미에서는 공동체가 되면서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자유도 느끼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도 합시다.

EA 무지는 집을 팔기도 하지만 레노베이션을 위한 설계도를 그려주는 사업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집의 설계도는 어떤 것일까요?

MK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만 ‘완성시키면 안 된다’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너무 많이 만들면 안 됩니다. 집주인이 키워갈 여지를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인 주택이나 아파트의 경우 모든 시설과 구조가 이미 다 정해져 있잖아요. 나의 취향과 개성껏 집을 꾸며갈 수 없는 것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내가 조금 돈이 생기면 여기를 조금 더 보강하고, 그다음에 저기를 보강하는 식으로 집을 완성해나가는 방법이 좋을 것 같습니다.

EA 이제 무지는 집을 팝니다. 야채나 고기 등 신선 식품이랑 자동차 빼고는 무지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자동차도 만들 건가요?(웃음)

MK 글쎄요, 무지가 만드는 자동차라면 이런 식일 겁니다. 일단 운전자의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값비싸고 고급스러운 자동차는 아니겠지요. 대신 시골 할아버지가 차를 타고 논까지 가고 싶을 때 “논!”이라고 외치면 차가 논까지 알아서 가고, “집에 가자” 하면 다시 집까지 운전해주는 그런 경량 트럭이 아닐까요?

EA 강연에서 ‘무지는 지역 진흥 사업을 통해 농어촌을 활성화하고 농업과 노동에 대한 경의를 살리고자 한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를 위해선 자연과의 공생과 공동체와 크리에이티브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고요.

MK 세계 모든 농부이 힘들겠지만 일본에서도 농업은 돈이 잘 안됩니다. 시장 자체의 문제도 있고 농장에 일손이 부족하고, 생산품이 출하 부적격 판정을 받는 등 문제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무에 상처가 있거나 오이가 너무 휘어 있으면 안 팔립니다. 생선도 마찬가집니다. 그물을 한번 끌어 올리면 생선 말고도 미역, 조개, 소라 등이 다양하게 잡혀도 인기가 낮은 종은 팔리지 않죠. 저는 그런 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농사계의 SPA 산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자라나 유니클로, H&M처럼 자사의 기획 브랜드 상품을 직접 제조해 유통까지 하는 전문 소매점 말입니다. 농가가 자신의 생산품을 출시할 힘을 갖고 있다면 지금까지 출하할 수 없었던 수확물도 팔 수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직거래로 고객에게 바로 값아 수수료를 줄인 받는다면 농가 수입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 비즈니스를 하고 싶습니다.

EA 무지는 소매 유통업으로 시작해서 어느덧 제조업까지 하고 있습니다. 집을 짓고 호텔을 기획하는 마당에, 이다음은 분류상 부동산업도 겸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무지는 어떻게 입지를 넓혀갈 계획인가요?

MK 아닙니다. 그렇게 전략적으로 사업을 확대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무인양품 매장이 아주 많다든지 매출이 아주 많다든지 하는 결과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계속 중소기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오늘 강연에서 몇 가지 소개한 대로, 사람이 생활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기분 좋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말로 표현은 안 하더라도 모두가 느끼죠. 일상생활에는 별로 기분 좋지 않은 것이 다행히 아주 많이 있으니까요.(웃음) 앞으로 할 일이 여러 가지 있을 것 같습니다.

바이라인 : 글: 김은아 기자, 인물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월간디자인 2017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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